날이 부쩍 추워지니 생각나는 음료가 있다.
유럽인들이 추운 겨울을 건강하게 나기 위해 즐겼다는 향신료가 든 와인, 뱅쇼가 바로 그것이다.
'뱅쇼'는 프랑스어로 '와인'을 뜻하는 '뱅(vin)'과 '따뜻한'이라는 뜻을 지닌 '쇼(chaud)'의 합성어로, 와인에 여러 부재료를 더해 끓인 '따뜻한 와인'이다.
영어로는 멀드 와인(Mulled wine)이라고 하며 영국의 전통적인 크리스마스 음료라고 한다.
와인에 향신료와 과일을 넣어 끓여서 따뜻하게 마시는 건강 음료로 소문이 나면서,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작년에 지인을 저녁 식사에 초대할 때, 차로 무엇을 내놓을까 고민하다가 뱅쇼를 만들어 낸 적이 있다.
미성년자 자녀를 데리고 자차를 운전해서 오는지라, 무알코올 뱅쇼를 만들기 위해 레드와인 대신 포도즙을 사용했다.
재료에 신경을 써서 파우치에 든 포도즙을 사용했더니 좀 걸쭉한 뱅쇼가 되어 보기에는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초대 손님이 뱅쇼는 처음 먹어 본다며 좋아해서 다소 위안을 받았었다.
좀 더 맑은 무알코올 뱅쇼를 원한다면 페트병에 든 포도 주스를 사용해도 되지만, 포도즙을 이용한 걸쭉한 뱅쇼도 건강해지는 맛이라 나름 괜찮았다.
와인이 든 뱅쇼는 갑자기 운전할 일이 생기면 곤란해질 것 같아 이후로도 무알코올 뱅쇼를 자주 만들어 마셨는데 그 맛이 자꾸 생각난다.
몇 번 만들어 보니, 뱅쇼 재료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얼마든지 가감이 가능했다.
다음 사진은 작년 겨울, 포도즙에 정향, 팔각, 히비스커스, 시나몬 스틱, 배, 오렌지, 레몬, 사과, 대추 등 집에 있는 온갖 과일과 향신료를 총동원해 만든 뱅쇼이다.
이렇게 만들어 두었다가 밤에 자기 전 따뜻하게 데워 마시니, 감기 기운으로 칼칼하던 목이 자고 일어나니 개운해졌다.
어느새 추억의 음료가 된 뱅쇼 생각이 간절해서 집에 있는 재료를 이용해 올 겨울 들어서는 처음으로 만들었다.
원래 뱅쇼는 레드와인으로 만들지만 화이트 와인을 사용해도 되고, 무알코올 뱅쇼를 만들고 싶으면 포도 주스나 포도즙을 넣으면 된다.
와인은 굳이 비싼 것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므로 시중에서 파는 저렴한 것으로 준비한다.
이번에는 꽤 오래 전 호텔에 갔을 때 받아서는 냉장고에 방치했던 화이트 와인으로 만들었다.
과일은 배, 사과, 오렌지나 귤, 레몬, 포도 등을, 향신료는 오픈마켓에서 뱅쇼 키트라고 해서 서너 가지 종류를 묶음 판매하는데 그걸 사도 되고, 개인의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것만 따로 구매해도 된다.
뱅쇼에 주로 들어가는 향신료로는 계피 향이 나면서 달짝지근한 시나몬 스틱, 달콤한 향에 매콤한 단맛을 내며 여덟 개의 꼭짓점이 있는 팔각, 정향나무의 꽃봉오리로 독특한 향을 가진 정향, 클레오파트라가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차로 마셨다는 신맛이 나는 열대 꽃의 여왕 히비스커스가 있다.
이 중에서 개인의 호불호에 따라 넣어도 되고 빼도 된다.
화이트와인(레드와인이나 포도즙으로 대체 가능) 귤 5개, 사과 2개, 배 1개, 레몬 1개 시나몬 스틱 4개, 정향, 팔각, 히비스커스 |
먼저, 귤, 배, 사과, 레몬에 베이킹소다를 뿌려서 솔로 과일 표면을 깨끗이 닦은 후 식초를 푼 물에 10분 정도 담가 둔다.
껍질까지 다 넣을 거라 최대한 깨끗이 씻고 헹궈 물기를 닦는다.
사과와 배는 뾰족한 과도로 꼭지를 중심으로 사각형으로 도려내어 채칼로 가로로 납작하게 썰고, 레몬도 역시 가로로 썰면서 씨앗을 제거한다.
냄비에 채칼로 썬 과일과 향신료를 담고 화이트 와인을 부은 후 약한 불에 올려 끓인다.
이때 끓인다기보다는 뜨겁게 데운다는 생각으로 뭉근하게 익혀야 와인의 알코올이 날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알코올에 취약한 나는 살짝 끓여서 일부러 알콜을 날렸다.
끓기 직전에 불을 최소로 줄여 20분 정도 더 불에 올려 두어, 와인에 과일과 향신료가 충분히 우러나게 한다.
이때 압력밥솥에 뱅쇼를 안친 이유는 한 번 살짝 끓여 알코올을 날린 후(일반적으로는 끓이지 않고 약불에서 뜨겁게 데운 후 불을 더 낮춰서 20분 정도 뜸을 들여 과즙이 우러나게 하고, 무알코올 뱅쇼를 원하면 살짝 끓인다.) 불을 끄고, 압력솥 뚜껑을 닫아 30분 정도 방치해 두면, 뜸 들이기를 따로 하지 않아도 잔열에 과즙과 향신료가 우러나오기 때문이다.
이제 체에 받쳐 걸러내면 뱅쇼 완성.
750mL 와인 한 병에 과일까지 넣었지만 체에 걸러 최종적으로 얻을 수 있는 뱅쇼는 500~600mL밖에 안 된다.
병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 두고 먹을 때마다 따뜻하게 데워 마시는데, 단맛을 좋아하면 설탕이나 꿀을 첨가해도 좋다.
다른 재료에 비해 귤이 많이 들어가서 때깔이 오렌지주스처럼 노랗다.
끓일 때 넣었던 시나몬 스틱을 물에 헹궈 잔에 걸쳐 놓으면 보기에도 좋고 뱅쇼를 저어서 마실 수도 있다.
화이트 와인과 과일, 향신료가 어우러져 레드와인이나 포도즙을 사용했을 때와는 또 다른 색과 맛이 느껴진다.
추운 밤에 한 잔 마시니 속이 따뜻해지면서 왠지 굉장히 위로받는 느낌이 든다.
뱅쇼 마시고 이 겨울을 잘 견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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