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억울하겠다. 플란다스의 개나 주인을 구한 진돗개처럼 충성스러운 개가 죽어도 사람들은 개죽음이라고 하니까."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광고가 유행할 때, 개죽음이란 단어가 안 좋은 의미라는 걸 알았는지 초등 저학년 아이가 걱정스레 했던 말이다.
'와, 천잰데? 접두사의 개념을 벌써 아는 거야?'
속으로 몹시 대견해하며 이렇게 얘기해 줬던 기억이 있다.
"걱정 마. 그때 '개'는 멍멍개가 아니라 별로 안 좋은 뜻으로 붙이는 접두사란 거거든."
그때만 해도 이것은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 되었다.
접두사는 어근의 앞에 붙어서 특정한 뜻을 더하거나 강조하면서 새로운 말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참살 구, 참나리, 참비름의 '참'이 ‘진짜’ 또는 ‘진실하고 올바른’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인데 반해, 개살구, 개나리, 개비름의 ‘개’는 ‘야생 상태의’ 또는 ‘질이 떨어지는’, ‘흡사하지만 다른’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로 쓰인다.
국립국어원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가나다에는 "개고생'의 '개-'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라는 질문에 '어려운 일이나 고비가 닥쳐 톡톡히 겪는 고생'을 이르는 ‘개고생’의 ‘개-’는 접두사로서 부정적 뜻을 가지는 일부 명사 앞에 붙어 ‘정도가 심한’의 뜻을 더합니다."라고 답변하고 있다.
접두사 '개'의 의미와 용례에 대해 보다 자세히 살펴 보면 아래와 같다.
개「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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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의 대명사와도 같은 ‘진달래’와 ‘개나리’도 각각, ‘달래’에 접두사 ‘진-’과 ‘나리’에 접두사 ‘개-’가 붙은 것이다.
이랬던 접두사 '개'가 신분 상승을 했다.
그것도 천민에서 양민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사대부쯤으로.
십 년이면 강산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도 이렇게 바뀔 수 있다는 걸 실제 경험하니 요즘의 빠른 변화가 어지럽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모든 접두사 개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던 기존 단어들은 여전히 그대로 쓰이고, 일부 접두사 개는 이전과는 의미가 달라져 몹시, 매우, 정말로의 의미로 쓰인다. (예:개짜증, 개이득, 개매너)
뿐만 아니라 기존에는 부정적 뜻을 가지는 일부 명사 앞에서만 쓰이는 위치적 제약이 있었다면, 요즘은 긍정의 의미로 명사는 물론 동사나 형용사 앞에도 올 수 있다.
긍정적인 의미를 장착하고 뒤에 오는 품사의 제약은 훨씬 줄었으니, 사대부로의 신분 상승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예: 개싫다. 개구리다, 개덥다, 개좋다, 개웃다)
국립국어원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가나다에는 이러한 질의응답이 있다.
<질의> 개같다, 개안좋다.개느리다 등 사회적 분위기로 봐서 욕설로 봐도 무방한 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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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문의하신 표현에 쓰인 '개'의 의미나 품사를 어떻게 풀이할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며, 표준 국어 대사전에서 이에 대해 명확히 밝힌 바가 없어 정확한 답변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
주로 젊은 세대들이 언제부터인가 접두사 개를 즐겨 쓰자, 이를 놓치지 않고 관련 이모티콘까지 출시되었다.
신분 상승에 그치지 않고 날개까지 달게 되었으니 그 파급력은 상당하여 이제는 쓰는 연령층도 확대되었고, 쓰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익숙하기까지 하다.
이제는 유행어를 지나 일상적인 언어로 자리 잡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때의 유행으로 끝날 것인지, 아니면 국립국어원에서 새로운 접두사로 인정하여 공포하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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