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처음 알게 된 건, 뒤늦게 몰아 본 tvN의 <알아 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2>을 통해서였다.
시즌1의 유희열, 유시민은 유임되었고, 김영하, 정재승의 뒤를 이어 장동선과 함께 등장한 인물이 바로 유현준 교수였다.
프로필을 찾아 보니 연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매사추세츠공대(MIT)와 하버드대에서 건축설계 석사학위를 받은 이른바 '학벌 깡패"로,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건축학전공 부교수이자 유현준 건축사사무소 대표였다.
유희열이 홍익대학교에서 명강의로 유명한 교수라고 소개할 때만 해도 무명(무지했던 당시의 내 생각에는)의 출연자를 선택한 제작진의 의도가 궁금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건축에 대한 전문 지식과 유시민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유려한 말발로, 쟁쟁한 출연진들 틈에서 위화감 없이 프로그램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서 '제작진은 다 계획이 있었구나.' 싶었다.
전문가의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각 지역의 유명 건축물의 설립 배경과 특성에 대해 자신의 건축 철학을 담은 해설을 쏟아냈다.
그리고 건축에서 '맥락'의 중요성에 대해 강연을 펼치는데, 여기에 감동한 유시민이 국가대표 선수가 동네 축구팀에 온 격이라고 평하며 그의 '건축학개론'에 찬사를 보냈다.
학벌 깡패라는 별명 못지 않게 수상 경력도 화려했는데, 건축 분야에서 주는 상의 권위를 전혀 모르는 내 기준으로 선별한 몇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999년 멤브레인 디자인 공모전 3등을 시작으로, 2010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대통령상, 2015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과 대한민국 건축학회 무애건축상, 2017 아시아 건축가협회 건축상과 시카고 아테나움 건축상 외 다양한 상을 수상했다.
이렇게 어디에 내놔도 꿀릴 것 없는 학벌과 경력을 가진 그의 인생도 들여다 보니 늘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유 교수는 <아홉시>와의 인터뷰에서, 설계사무소를 열었지만 일거리가 없어 대출을 끌어다 직원들 월급을 줘야 하는 어려움을 40대 후반까지 겪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길이 열리는 대로 가는 것이며, 차선이 모여 최선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15만 원을 벌기 위해 쓴 신문 칼럼이 좋은 반응을 얻어 고정 칼럼을 쓰게 되었고, 그 글이 한 출판사의 눈에 띄어 베스트셀러가 된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2015)가 세상에 태어났다고 한다.
이후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tvn <어쩌다 어른>에 출연해 얼굴을 알리고, <알아 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2>를 통해 대중적인 인지도가 급격히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만약 원고 청탁이 들어왔을 때 건축으로 승부를 보겠다고 고집하며 공모전만 냈으면, 폐인이 되어 세상을 원망하며 살고 있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열리는 길에서 최선을 다한 게 뜻하지 않은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고 한다.
2016년 11월 <청소년 공감콘서트 온드림스쿨> 강원 홍천 편에서는 청소년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인생 건축학개론 강연을 하면서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온 경력과 결과물을 “불안감이 만들어 낸 성취”라고도 했다.
건축에 대한 그의 꿈은 공간을 통해 사람들을 영적으로 감동시키는 것이라고 하는데, 현실에 안주하지 않기에 느끼는 불안감 속에서 그 꿈이 성취되기를 기대한다.
최근에는 국내 최대 사회적 가치 민간 축제인 ‘SOVAC 2020(Social Value Connect 2020)’ 강연에서 건축물은 사회적 가치를 생각해야 한다는 지론을 펼쳤다.
SOVAC 2020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포스팅 참고: https://gettingwings.tistory.com/10
건축에 사회적 가치를 담으려면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서로 교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나에게 사회적 가치는 이자다. 사회적 가치는 추가로 얻는 것으로 내 자산을 소유만 하면 자산 가치는 떨어지지만, 타인과 교류하고 함께 이용하면서 부가적 가치를 창출한다."라고 사회적 가치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피력했다.
참 멋진 말이다.
아니, 말보다 사람간의 관계를 중시하고 건축을 통해 공유와 소통을 실현하려는 그의 생각이 멋져 보였다.
나만의 공간을 함께 하는 공간으로 만들어 외부와 소통하고 타인과 교류가 이어지도록 하면, 건축은 대결과 갈등을 넘어 서로가 윈윈 할 수 있다는 말에서 그의 사람됨을 엿볼 수 있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야 하는 우리가 되새겨 볼만한 목소리이다.
관심 가진 만큼 보인다고 요즘은 방송과 신문, 유튜브 등 여러 매체와 강연에서 그의 모습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전문 지식이 있어도 전달력이 부족한 전문가도 많은데 유현준 교수의 건축학개론 강의는 대중을 끌어 들이는 힘이 있다.
건축에 대한 안목을 넓고 깊게 해 주면서도 이야기에 빠져들게하는 재미가 있다.
그래서 학벌 깡패에 이어 강연 깡패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한때 반짝 떠오르는 스타가 아니라, 그의 따뜻한 건축 철학이 녹아든 프로그램과 강연, 서적이나 건축물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되는 건축가가 되길 바란다.
쓰다 보니 건축가 유현준에 대한 예찬론자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유현준 교수와는 일면식도 없는 늦깍이 팬임을 노파심에 굳이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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