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스테이 장소 쌍산재와 윤여정 / 그 조화로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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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윤스테이 장소 쌍산재와 윤여정 / 그 조화로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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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이는 박노해 시인의 시 제목이자, 건축가 승효상의 도서명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을 견뎌낸 것들의 아름다움을 잔잔하면서도 강렬하게 표현한 이 시를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얼마 전에, 오래된 것들의 아름다움을 새록새록 느끼게 해 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만났다.

 

'깊은 세월과 자연이 어우러진 한옥에서 정갈한 한식을 맛보고, 다채로운 즐거움을 누리며, 고택의 낭만을 느끼는 시간!'

 

'오롯한 쉼을 전달하는 한옥 체험 리얼리티'

 

tvN에서 매주 금요일 오후 9시 10분부터 방송하는 윤스테이가 바로 그것이다.

 

배우 윤여정을 간판으로 내세워 해외에서 외국인에게 한국의 맛과 문화를 알렸던 윤식당을 잇는, 나영석, 김세희 PD가 연출한 예능 프로그램이다.

 

코로나 시국에, 업무상 발령이나 학업 등으로 우리나라에 입국한 지 1년 미만의 외국인에게 한국의 정취가 가득한 한옥에서의 색다른 경험을 선사하겠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취지이다.

 

 

<출처: 윤스테이 공식 홈페이지>

 

외국인과 영어로 의사소통은 물론 농담까지 주고받아 오프라 윤프리라는 별명까지 얻은 사장 윤여정, 경영의 신 이서진, 그 어렵다는 궁중요리까지 척척 만들어내는 주방장 정유미와 부주방장 박서준, 손님 픽업과 서빙에 주방 보조까지 맡아 동분서주하는 막내 최우식까지 다섯 명이 윤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다.

 

윤스테이 장소는 전라남도 구례군 마삼면에 위치한 한옥 고택 쌍산재이다.

 

쌍산재라는 택호는 고택 운영자의 고조부님의 호(쌍산)에서 따왔다고 하는데, 6대에 걸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200여 년이 된 집으로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크다.

 

윤스테이에서는 진, 선, 미라는 이름의 숙소와 매, 난, 국, 죽의 다이닝룸으로 나오지만, 쌍산재 각 건물의 원래 명칭은 다음과 같다.

 

 

<출처: 쌍산재 홈페이지>

 

이것을 윤스테이에서는 관리동과 직원 숙소, 다이닝룸이 있는 아랫마을과 세 채의 손님 숙소인 진, 선, 미와 온실인 동백이 있는 윗마을로 구분하고 있다.

 

 

 

 

 

 

 

 

스페인 하숙과 윤식당을 묶어 놓은 듯한, 숙박에 음식까지 제공하는 윤스테이를 보고 있자면 은근히 힐링 된다.

 

궁중 떡볶이, 만둣국, 호박죽, 율란 떡갈비, 부각과 콩소스, 닭강정 등 윤스테이에서 만들어내는 음식은 금요일 밤에 야식을 부른다.

 

넓디넓은 고택 쌍산재의 건축미와 아름다운 정원의 정취, 그 옛날 임금님이 드셨다는 궁중요리가 포함된 맛과 정성이 듬뿍 든 식사에 진심을 담은 직원들의 친절한 서비스까지, 삼박자를 모두 갖춘 윤스테이를 보면서 1박 2일 여행에 나도 어느새 함께 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다.

 

그런 만족감을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닌지, 전국 가구를 기준으로 1회 때 8.2%로 시작한 시청률이 2회 10.2%, 3회 11.5%로, 3회 연속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면서 지상파를 포함한 전 채널에서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3회차에는 수도권 가구 기준 평균 13.3%, 최고 15.8%를 찍었다고 하니 놀라운 성과이다.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르고, 밋밋한 듯하면서도 재미와 감동이 있는 나영석 PD의 매직이 이번에도 통했나 보다.

 

 

윤스테이를 보면, 오래된 것(사람)들의 아름다움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시간은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거장의 손길

 

하늘은 자신이 특별히 사랑하는 자를

 

시련의 시간을 통해 단련시키듯

 

시간을 견뎌낸 것들은 빛나는 얼굴이 살아난다

 

(박노해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중)

 

 

200여 년의 시간을 견딘 고택 쌍산재의 대청마루에는 세월의 흔적과 무게가 그대로 드러난다.

 

 

<출처: 쌍산제 홈페이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등이 굽은 나무와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켜왔을 글씨 새겨진 바위가 너무나 잘 어울린다.

 

 

 

 

윤스테이를 보니 몇 년 전 안동 하회마을에 있는 서애 류성룡 선생이 '징비록'을 집필했던 고택 옥연정사에서 하룻밤 묵었던 추억이 떠오르며 마음은 이미 쌍산재로 향하고 있었다.

 

올해 75세의 사장 윤여정은 이 고풍스러운 한옥과도 꽤 닮았다.

 

배우 생활 40년 만에 처음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인 '무릎팍도사'에서 자신은 생계형 배우라고 스스로 밝혔듯이, 그에게 연기는 예술 이전에 먹고살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이었던 듯하다.

 

명성과 연륜이 있는 배우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노출이 많은 영화 '바람난 가족'을 찍게 된 것도 그 당시 집수리 비용이 예산을 초과하면서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털어놓는 모습에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있다.

 

자신의 삶에 대해 포장하거나 은폐하기는커녕 자기 폭로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만, 그만의 품격과 카리스마는 오히려 더 견고해 보였다.

 

200여 년 세월 속에서도 우아함과 고풍스러움을 간직해 온 쌍산재와 세월의 흔적과 삶의 무게를 덤덤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당당히 자기의 자리를 지켜온 윤여정 모두에서 '오래된 것(사람)'의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연장자에 대한 예우로 만들어진 자리라기보다는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구축해 가고, 그만의 맛깔스러운 유머로 방송에 활력을 불어넣는 모습이 사장으로서 손색이 없다.

 

여기에 다른 출연자들도 각각의 개성을 살려 방송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니 시청률이 높은 건 당연한 듯하다.

 

윤여정은 연기를 시작할 때부터 주목받는 배우였지만, 결혼으로 배우 생활을 접었다가 이혼 후 복귀하면서 생계형 배우로 끊임없이 연기에 매진하여 나이 들수록 주목받게 된 흔치 않은 배우이다.

 

최근 영화 '미나리'로 수많은 상을 휩쓸었고, 오스카상 여우조연상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그의 이러한 활약이 배우에게만이 아니라, 이 땅의 많은 사람에게 시간을 견뎌낸 사람의 얼굴은 그 자체로 얼마나 빛날 수 있는지, 그래서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느끼는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쌍산재와 윤여정의 조화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금요일이 벌써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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