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이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김소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 <진달래꽃>.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 김소월.
그에게는 민족 시인, 정한의 시인, 전통적 서정 시인 등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최소한의 교육이라도 받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그의 시 한두 구절쯤은 읊조릴 수 있을 만큼, 교과서에 여러 편이 실렸고 노래로도 다수 불리고 있다.
<진달래꽃>의 지은이를 묻는 문제가 한국인 귀화 시험에 출제되었다고 하니, 우리 시를 논하면서 빠질 수 없는 시인이 김소월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김소월 시인은 음력 1902년 8월 6일, 양력으로 9월 7일에 평안북도 구성에서 태어났다.
지난 9월 7일, 국내 포털 사이트에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는데 구글 홈페이지에 김소월의 초상화가 걸린 것을 보고 좀 놀랐다.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미국 회사 구글에서 우리나라 시인의 생일을 챙겨 주다니......
생각난 김에 시인 김소월에 대해 검색해 보다가 탄식이 절로 나왔다.
시작은 단순한 호기심에서였다.
김소월의 시는 지금은 저작권이 모두 만료되었겠지만, 해당 기간 동안 저작권료를 얼마나 받았을까 궁금했다.
<진달래꽃>, <엄마야 누나야>, <산유화>, <접동새>, <못 잊어>, <초혼>, <먼 후일>, <가는 길> 등 온 국민이 애송하는 시가 많고 시에 곡을 붙여 노래로 불리는 것만도 여러 곡이니, 후손들이 받은 저작권료가 어마어마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9년에 JTBC의 '너의 노래는'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김소월의 시 <개여울>에 곡을 붙인 정미조의 노래 '개여울'을 정재일의 편곡과 피아노 반주로 아이유가 노래를 부른 적이 있는데, 소월 시를 소재로 한 노래 중 압권이다.
아름다운 노랫말에 피아노와 첼로 반주, 그와 찰떡같이 어울리는 아이유의 목소리가 주는 감동은 백문 불여일견(百聞 不如一見)이니 유튜브 영상으로 대체한다.
방탄소년단 소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수석 프로듀서 피독이 2019년·2020년 2년 연속 국내 저작권료 1위를 차지했다느니, 장범준은 자작곡 '벚꽃 엔딩'이 벚꽃 연금이라느니 하는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리라는 예측은 하고 있었다.
저작권은 저작물을 창작한 때부터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권리로(저작권법 제10조 제2항, ‘무방식 주의’), 저작자 생존 기간 및 사후 70년 동안 보호를 받으니(법 제39조 제1항, 단 2013년 7월 1일 이전까지는 사후 50년), 1902에 태어나 1934년에 사망한 김소월 시인은 1984년까지는 저작권료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아 보면 볼수록 어이가 없었다.
33세의 나이로 요절하기까지 민족사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척박한 시기를 살아낸 그의 삶이 사후에도 나아진 것 없고, 고스란히 그의 후손들에게도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그가 세 살 되던 1904년, 아버지 김성도가 일본인들에게 폭행당해 정신이상자가 되면서부터 집안에 우환이 들어 할아버지 댁으로 옮겨 살게 된다.
1916년 15 세의 나이에 홍단실과 결혼해서 4남 2녀를 얻게 되는데, 장녀 김구생과 3남 김정호를 제외하고는 모두 북한에 남았다.
큰딸 김구생은 한국 전쟁 중 요절하였고, 아들 김정호는 인민군으로 남한에 왔다가 포로가 된 뒤 남한에 재입대하여 이후 남한에서 살면서 1958년 결혼해 1남 1녀를 두었다.
현재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김소월의 후손은 3남 김정호의 딸인 손녀 김은숙과 아들인 손자 김영돈, 그리고 증손자 3명을 포함해 총 5명이 있다.
민족 시인 김소월의 후손으로서 느껴야 했던 심리적 부담은 컸지만, 북한의 가족들과 헤어져 혈혈단신으로 남한에서 살아야 했던 김정호 일가에게 남한살이는 가혹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그들이 할아버지 김소월로 인해 받은 경제적 혜택이라고는 미스터피자 광고에서 시 <진달래꽃>의 단어 사용료 몇 푼이 전부라고 한다.
그것마저도 저작권 보호 기간이 지났으나 평소 소월 시를 좋아했던 회장의 지시로 받게 되었다고 한다.
생전에 아버지의 기념관 건립을 간절히 원했던 아들 김정호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떴다.
그의 딸 김은숙 씨는 2010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소월 문학관 건립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였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6/25/2010062501427.html
1981년 대한민국 예술분야 최고의 영예인 금관문화훈장이 추서 되었지만, 북한 출신인 소월의 기념관 건립에 대해 정부도 지자체도 나서는 데가 없었다.
그러던 중 (사)새한국문학회(이사장 이철호)에서 2019년 6월 5일 증평군 도안면 화성리 450에서 ‘소월·경암문학기념관’(관장 유금남)을 개관하였다. (경암은 이철호 이사장 자신의 호)
그동안 소월백일장, 소월문학상 등을 제정해 시상해 왔던 이철호 이사장은 소월의 시 세계를 널리 알리고 자신의 55년간의 문단 생활을 총 결산하기 위해 사재 40억 원을 들여 대지 1000평, 연건평 1322㎡ 3층 규모로 이 문학관을 건립했다고 한다.
개인의 사재 출연으로 지은 이것이 최초의 소월 문학관이다.
소월 문학관 건립에 대해 지자체에서의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8년 3월에 김포시에서는 800만 실향민들의 마음을 담은 ‘김소월 문학관’을 하성면 평화생태공원(애기봉)에 연내 착공하여 2019년 10월 완공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http://monthly.chosun.com/client/mdaily/daily_view.asp?idx=3596&Newsnumb=2018033596
그러나 2019년 3월 12일, 이마저도 소월이 김포와 연관이 없을뿐더러 평화를 상징하고 김포의 대표적 생태보전지역으로 조성되는 공원 콘셉트와 맞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김포시가 건립 자체를 취소했다는 기사가 인천일보에 실렸다.
민선 6기에서 7기로 넘어가면서 정치적 판단도 들어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나도 이렇게 씁쓸한데, 유족들의 심정이야 오죽했겠는가.
http://www.incheo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935269
한 나라의 대표적인 시인이자 온 국민이 읊조리는 시를 남긴 국민시인을 어느 나라에서 이렇게 대우한단 말인가.
부끄러움이 밀려왔고, 안타까움에 탄식이 절로 나왔다.
K-Pop 열풍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고 BTS 보유국임을 자랑하며 우리 스스로 문화 강대국임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는데, 민족 시인 소월을 대하는 예우는 부끄럽기 짝이 없다.
이것은 정부 차원에서 나서서 오래전에 해결했어야 하는 문제가 아니었을까?
요즘 선한 영향력을 전 세계에 미치고 있는 BTS의 팬클럽 아미 (Adorable Representative MC for Youth)에 부탁하는 게 빠르려나 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들었다.
국민시인에 대한 제대로 된 국가적 차원의 예우를 기대하며 소월 시 몇 편을 더 소개한다.
엄마야 누나야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초혼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산유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접동새
접동
접동
아우래비 접동
진두강 가람가에 살던 누나는
진두강 앞 마을에 와서 웁니다.
옛날, 우리나라
먼 뒤쪽의
진두강 가람 가에 살던 누나는
의붓어미 시샘에 죽었습니다
누나라고 불러보랴
오오 불설워
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
아홉이나 남아 되던 오랩동생을
죽어서도 못 잊어 차마 못 잊어
야삼경 남 다 자는 밤이 깊으면
이 산 저 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먼 후일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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