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날이었다.
온라인으로 장을 보다가 쿠키 만들기 재료가 눈에 띄었다.
'토이쿠키 만들기'
자연 재료로 색을 낸 6 가지 종류의 컬러 반죽에 모양 틀까지 들어 있어서, 여러 모양으로 빚어 에어프라이어나 오븐 팬에 구우면 알록달록 맛있는 쿠키가 된단다.
갑자기 딸내미 어릴 때 생각이 났다.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친구 엄마가 쿠키를 굽는 걸 보고 와서는, 엄마도 쿠키 만들 줄 아냐고 물었다.
쿠키는 사 먹는 것인 줄만 알았는데, 집에서 엄마가 만들어 주는 친구도 있다는 게 신기했나 보았다.
늘 바쁘게 시간에 쫓기며 사느라 집에서 직접 반죽을 해서 쿠키를 굽는다는 건 당시 나에게는 딴 세상 얘기처럼 느껴졌었다.
집에 오븐이 없으니 오븐 사면 같이 굽자 했더니, 그 후 오븐은 언제 사냐고 묻곤 했지만 어영부영 몇 년이 지났다.
충족하지 못한 욕구의 발로인지 몇 년 뒤에 아이는 제빵 도구 목록을 내밀며 사 달라고 했다.
몇 가지 되지도 않는 도구를 가지고 인터넷 검색으로 찾은 레시피로 쿠키와 식빵, 컵케익, 스펀지케이크, 생크림 케이크 등을 뚝딱 만들어 냈다.
저러다 제빵사로 진로를 정하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한동안 열심이더니, 한 일 년 정도 지나니 시들해졌고 제빵도구는 점점 깊숙한 곳으로 밀려 들어갔다.
'토이쿠키 만들기'를 보니 그때 생각이 나고 뒤늦게 반성도 되었다.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왜 그때 같이 쿠키를 만들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과 미안함이 밀려왔다.
이미 지나간 시간은 돌이킬 수 없으니 지금이라도 해 보자는 생각에 쿠키 만들기 제품을 장바구니에 같이 담고 결제를 했다.
냉동실에 며칠을 보관해 두었다가 어느 날 한가한 저녁 시간에 딸에게 "쿠키 만들래?" 했더니, 무슨 쿠키냐며 의아해했다.
냉동실에서 쿠키 박스를 꺼내기 이전, 아니 장바구니에 담고 결제할 때부터 난 이미 각오를 하고 있었다.
내가 나이가 몇인데 무슨 쿠키 만들기냐, 엄마 갑자기 왜 이러냐, 그럴 시간이 어디 있냐 등의 말과 함께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이더라도 당연한 거라고.
쿠키 박스를 보더니 왜 샀냐고 묻길래 같이 만들고 싶어서 샀다고 했더니, 말로는 내가 애도 아닌데 하면서도 예상과는 달리 반색을 하는 게 아닌가.
나이가 들어도 엄마한테는 항상 아기니까 오랜만에 같이 놀아 보자고 했더니 "콜~"이라고 외치는 그 한 마디가 퍽이나 경쾌하게 들렸다.
그날 쿠키를 만들며 우린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어렸을 때 그렇게 엄마랑 쿠키를 만들고 싶어 했는데 그때 같이 못 놀아 줘서 미안하다고 했더니, 그걸 아직까지 기억하고 미안해하는 엄마가 고맙다고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었다.
어떤 건 틀에 넣어 찍고, 다른 건 조물조물 모양을 빚으면서 서로에게 잘 만든다는 칭찬을 하다 보니 우린 어느새 타임머신을 타고 10여 년의 세월을 거슬러 가 있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재미있을까 싶을 정도로 우린 그날 많이 웃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딸내미가 했던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부모님들은 자식이 이렇게 커도 아기인 줄 알고 쿠키 만들기를 사는데, 자식들 중에는 밖에 나가 섣부르게 어른 행세를 하는 경우가 있어서 그 간극이 왠지 슬프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쿠키 만들기라는 놀이를 통해 얻은 것 치고는 너무나 깊이 있는 깨달음이 아닌가.
놀면서 배운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이건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즐길수 있는 어른이용 장난감으로 손색이 없다.
<퀴즈> 위의 쿠키 사진 중,
1. 굽기 전후 모양 변화가 제일 심한 것은 어느 것일까요?
2. 볼 빨간 곰돌이 아래쪽에 있는 동물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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