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혜 만드는 방법과 황금 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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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식혜 만드는 방법과 황금 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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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혜 만드는 방법과 황금 비율

식혜를 만들기 시작한 건 한 5년 전쯤부터이다.
 
어릴 때 명절이나 잔치에 먹었던 식혜는 달달한 맛과 함께 그 흥성스러운 분위기까지 녹아든 맛으로 기억해서인지, 언제 먹어도 맛있고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힘이 있다.
 
객지 생활을 하며 어쩌다 한 번 집에 가면, 엄마는 가자마자 시원하게 한 잔 마시라며 식혜를 내어 주시곤 했다.
 
그런데 혼자 사시던 엄마가 편찮으셔서 요양병원에 입원하시면서, 나의 힐링 음식인 엄마표 식혜는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추억 속의 음식이 되고 말았다.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식혜 생각이 간절해서, 맛있다는 데를 수소문 해 사다 먹었지만 뭔가 2% 부족한 맛이었다.
 
재료라고는 엿기름과 쌀, 물, 설탕이 다이니 맛에 엄청난 차이가 있기 어려운 것이 식혜인데, 그 부족한 2%가 내게는 98%만큼이나 크게 느껴졌던 이유는 아마도 '엄마의 손맛' 때문이 아니었을까.
 
사 먹는 식혜에 매번 만족하지 못하다가 어느 날은 내가 직접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도 해 본 적은 없지만, 어릴 때부터 엄마가 하시던 건 많이 봐 왔던 터라 낯설지는 않았다.
 
인터넷 검색으로 여러 사람들의 비법을 모아 처음 식혜를 만들던 날의 감동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처음 시도인데 행운이 따랐는지 "이것이 진정 제가 만든 것이옵니까?"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맛있었다.
 
 

<완성된 식혜>

 
 
자신감이 생겨서 그 후로도 몇 번 더 만들면서 당도까지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 주변에 한 병씩 나눠 주었더니 맛있다며 좋아들 했다.
 
엄마를 뵈러 병원에 갈 때 2L짜리 세 병을 갖다 드리며 병실에 계시는 분들과 나눠 드시라고 했더니 엄마가 어찌나 놀라시던지.
 
"네가 어떻게 식혜를 다 만들었냐, 처음 만들었는데도 어쩌면 이렇게 맛있게 했냐, 모두 다 잘 드셨다."라며 엄마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엄마가 만들어 준 식혜를 더 이상 먹을 수 없으니 이젠 내가 엄마께 만들어 드리려고 인터넷으로 배웠다고 했더니, 옆에 앉혀 두고 가르쳐도 못할 텐데 글로 배워 이렇게 잘했다며 또 칭찬이 쏟아졌다.
 
자식 칭찬은 팔불출이나 하는 거라 생각하셔서 다 크도록 칭찬 한 번 제대로 받은 기억이 없었는데, 연세 드시면서 언제부턴가 그동안 안 했던 칭찬까지 몰아서 해 주시는 엄마 덕분에 내 어깨는 한껏 높아졌다.
 
그 후로 엄마를 뵈러 병원에 가기 전 뭐 드시고 싶냐고 여쭈어 보면, 늘 아무것도 필요 없고 식혜나 해 오라고 하시는데 내가 식혜 좋아하는 건 엄마를 닮아서였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식혜는 엄마 그 자체인 음식이 되었다.
 
돌아가시기 3주 전에도 엄마는 내가 만든 식혜를 드셨고, 이후로 점점 기력과 의식이 사그라지더니 엄마 삶의 불꽃은 영원히 사그라들고 말았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도 엄마 생각에 눈물이 찔끔 나는 날엔 식혜를 만들었다.
 
엿기름을 물에 불려서 조물조물 주물러 엿기름물을 만들고 그걸 가라앉혀 웃물을 따라 고두밥에 붓고 삭히다 보면, 내 마음의 응어리도 가라앉고 삭아서 말개지며, 엄마 없는 세상을 살아갈 힘이 나는 것만 같았다.
 
식혜 만들기는 나에게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엄마를 그리워하는 방법이며, 몸으로 부르는 사모곡(思母曲)이었다.
 
엄마 돌아가시고 한 3 년 동안 만든 식혜가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2L들이 병으로 100개는 족히 넘나 보다.
 
먹는 게 목적이 아니었기에 만들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들에게 선물했다.
 
맛있다며 다들 좋아했는데 그 또한 힘이 되었다.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5촌 조카한테서 전화가 왔다.
 
안 그래도 소식이 궁금하던 차에 받은 전화라 반가움에 안부를 물었다.
 
"별일 없지?"
 
"......"
 
여느 때 같으면 무의식적으로라도 "응." 하는 대답이 뒤따랐을 텐데 아무 말이 없었다.
 
그 잠깐의 침묵에 온갖 생각이 스치면서 얼음처럼 굳어 버렸다.
 
"고모~ 나 아파."
 
그 후에 무슨 말이 어떻게 오갔는지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견디기 힘든 두통으로 병원에서 온갖 검사를 다 해도 원인을 못 찾아서 진통제를 달고 살면서도 그렇게 억척같이 1인 다역을 해 내더니, 밤중에 참을 수 없는 복통으로 응급실을 갔더니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하더란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 만한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검사를 하니 위암이 이미 상당히 진행된 생태였다고 했다.
 
수술을 하려고 했으나 온 몸으로 전이가 심해서 수술실에서 도로 나왔고, 병원에서는 더 이상 손 쓸 방법이 없으니 남은 시간은 집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라고 했단다.
 
이후 수소문 끝에 다른 병원을 찾아 위 절제 수술은 했지만, 암은 다른 네 군데 장기로 전이가 된 상태라는 말을 남 얘기하듯 담담히 했다.
 
처음에는 가족 이외에는 아무한테도 말 안 했는데, 고모한테는 얘기해야 할 거 같아서 이제야 말한다고.
 
그 후 몇 개월 더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동안, 엿기름에는 당화 효소인 아밀라아제가 들어 있어서 기름진 음식을 먹거나 과식 후에 소화제 역할을 해 주니 조카한테 좋을 거라고 생각해서 식혜를 한 번 만들어다 줬다.
 
너무나 맛있게 잘 먹었고 때때로 식혜 생각이 난다고 해서, 조만간 다시 만들어서 병문안을 가겠다고 약속했다.
 
두 번째 식혜를 들고 병원을 찾아갔을 땐 식사가 금지된 상태였다.
 
그런데도 자기만의 방법으로 맛있는 음식을 즐길 방법을 찾았기에 먹을 수 있다며 반색을 했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일단 입에 넣고 씹다가 뱉기만 해도 먹은 것과 같은 맛과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며 좋아하는데, 정말 신나 보였다.
 
의사들이 더는 방법이 없다고 말한 상황에서 다들 슬퍼하고 낙담할 때, 시기만 다를 뿐 누구나 죽는 거니 죽음도 받아들여야 한다며 환자가 오히려 가족과 친구들을 위로하더니 이젠 저런 자랑을 하는 조카가 대단해 보였다.
 
그러고 얼마 후 조카는 자기가 곧 떠날 때가 된 것 같다는 말을 엄마한테 남긴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해서 내 식혜에 또 다른 사람이 담기게 되었고, 식혜는 나에게 사모곡(思母曲)을 넘어 사인곡(思人曲)이 되었다. 
 
 


 
 
그게 무엇이든 누구에게나 추억과 사랑,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담긴 음식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식혜가 유독 그런 음식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이제 4년 6개월이 되었고, 언제부터인지 내가 식혜를 만드는 간격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이제는 굳이 몸으로 부르지 않아도 "엄마 보고 싶어."라는 말로도 사모곡을 부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일까?
 
생각난 김에 내일은 오랜만에 식혜나 만들어 봐야겠다.
 
 
 

식혜 만드는 방법: 시행 착오 끝에 찾은 황금 비율 

 
 
1. 엿기름을 베주머니에 넣고 물에 불린다. 이때 엿기름의 양은 물 1L당 100g으로 잡는다. (식혜 6L를 만들고 싶으면 엿기름을 600g 넣는다.)
 
2. 1의 엿기름에 총물의 양 중 먼저 2분의 1(식혜 6L 만들 때는 3L)을 넣고 엿기름이 든 베주머니를 조물조물한 뒤 엿기름물을 큰 그릇에 담는다.
 
3. 나머지 2분의 1 분량의 물을 넣고 2와 같은 방법으로 엿기름 주머니를 주물러 꼭 짠 뒤 엿기름 물을 합한다
 
4. 3의 엿기름 물을 찌꺼기가 밑에 가라앉도록 30분 정도 방치한다.
 
5. 그 사이 쌀 3인분을 씻어 전기밥솥(전기압력밥솥 아님. 쌀은 물 2L당 1인분)에 안쳐 고두밥을 한다. 이때 쌀은 불리지 않아도 되고, 물은 쌀이 겨우 잠길 정도로 적게 잡는다.
 
6. 고두밥이 다 되면 4의 엿기름물을 웃물만 살살 따라 5의 전기밥솥에 붓고, 밥알이 뭉치지 않게 최대한 주걱으로 흩어 준다. 이때 엿기름 찌꺼기까지 들어가면 식혜 색깔이 검게 되니 되도록이면 웃물만 살살 따라 준다.
 
7. 전기밥솥을 보온 상태로 두고 고두밥이 골고루 삭도록 두 시간에 한 번씩 주걱으로 휘휘 저어 준다. (이때 안 저어 주면 밑에 있던 밥과 위에 있던 밥의 삭는 정도와 색깔에 차이가 나므로 꼭 저어 준다.)
 
8. 6~8 시간 뒤 밥알이 대여섯 개 떠오르면, 전기밥솥 뚜껑을 연 채 취사 버튼을 눌러 끓인다. (이게 간편하기는 하지만 나는 가스레인지에 펄펄 끓이는 게 더 맛있는 것 같아서 큰 냄비에 옮겨 붓고 가스레인지에서 끓인다.)
 
9. 처음 끓어오를 땐 거품이 많고 넘칠 수 있으니 반드시 옆에서 기다리다 넘치기 전에 중불로 줄인 뒤 거품을 걷어 낸다.)
 
10. 중불에서 10분쯤 끓인 후 물 1L당 설탕 80~100G을 넣고 5분 정도 더 끓여 준다. (80g은 별로 안 달고, 100g은 단맛)
 
11. 식혀서 냉장고에 넣었다가 시원하게 마시거나 냉동고에 넣어 슬러시로 만들어 먹는다. (밥알이 동동 뜨는 식혜를 원하면 10단계에서 설탕을 넣기 전 체로 밥알을 건져 찬물에 헹궈 물기를 빼 두었다가 먹기 전 한 숟가락씩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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