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밥심 지킴이 친정 오빠.
햅쌀이 출하되면 해마다 직접 농사지은 분한테서 쌀 세 가마니를 사서, 오빠네가 한 가마니 갖고 조카네와 우리 집에 한 가마니씩 나눠 준다.
한꺼번에 목돈을 들여 한 해도 이렇게 하기도 힘든데, 10 년이 넘도록 참 꾸준히도 하고 있다.
비닐봉지에 쌀가마니를 넣고 꽁꽁 묶어 두고 잡곡과 섞어 먹으면, 다음 햅쌀이 나올 때까지 한 해 동안 잘 먹고는 했다.
그런데 지난여름 장마가 유난히 길었던 탓에 여름이 지나면서 쌀이 거뭇하게 색깔이 변하면서 밥맛도 현저히 떨어졌다.
쌀뜨물 색깔이 뽀얗지 않고 거무스름해서 어느 때보다 깨끗하게 씻어 밥을 안쳐야 했다.
얼마 전 조카가 우리 집에 왔을 때, 쌀 씻는 것을 보더니 너무나 신박한 쌀 씻기라며 감탄을 했다.
몇 년 전에 조카에게도 알려 준 방법인데 별 필요성을 못 느끼다가, 올해는 쌀 상태가 안 좋아져 밥에서 묵은쌀 냄새가 나서 고민 중이었던지라 눈이 번쩍 뜨였나 보다.
알 만한 사람은 알지만 대부분은 모르는, 손에 물 안 묻히면서 쉽고 빨리, 그리고 아주 깨끗하게 쌀 씻는 비법을 공개한다.
우선 준비물은 스테인리스 쌀 함박(물을 받을 수 있고 채반이 들어간다면 어떤 용기든 가능) , 쌀 함박 안에 들어가는 크기의 스테인리스 채반, 거품기(휘퍼)만 있으면 된다.
이때 스테인리스 채반은 볼에 구멍이 뚫린 것은 쌀 부스러기가 낄 수 있으므로 체처럼 발이 고운 것이 좋다.
다이소에서 쌀 함박과 채반 세트로 만 원이 안 되는 가격에 살 수 있다.
쌀 씻는 도구가 준비되었다면 알고 나면 세상에서 제일 쉬운 쌀 씻기를 시작해 보자.
쌀 표면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이물질이 있어서 깨끗하게 씻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너무 박박 문질러서 오래 씻으면 영양분 손실이 있으므로 되도록 빠르게 깨끗이 씻어야 한다.
쌀을 물에 담그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우선 쌀 함박에 물을 먼저 받는다.
물을 받은 쌀 함박에 쌀을 넣고 거품기로 원을 그리며 씻어 준다.
이때 거품기에 힘을 가할 필요는 없고 살살 회전하면서 씻은 후, 채반만 들어 올려 쌀 함박의 물을 버린다.
일반 쌀 함박은 물론이고 타공 된 쌀 함박에 씻을 때는 쌀이 빠져나가지 않게 물을 살살 따라야 하지만, 이때는 채반만 들어 올리고 쌀 함박의 물은 그냥 휙 버리면 된다.
쌀겨가 많은 쌀이나 묵은쌀은 쌀 함박에 물을 가득 채워 채반을 들었다 놨다 하면 이물질이 더욱 잘 빠진다.
시간 단축도 되고 쌀도 깨끗이 씻을 수 있고, 무엇보다 속이 후련하다.
이와 같은 과정을 3~4회 반복하여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씻는다.
처음 이 방법으로 쌀을 씻을 때는 거품기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휘휘 저어가며 씻었더니 채반에 손톱이 쓸려서 손톱 표면이 허옇게 되었다.
혹시 네일아트라도 하고 있을 때면 알게 모르게 그 가루가 밥에 들어갈 것 같은 찜찜함 때문에 거품기를 사용하니 세상에 이렇게 편하고 좋을 수가 없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니 손도 보호하고, 밥에 이물질 들어갈 염려도 없으니 일거양득이다.
마지막으로 씻은 쌀을 물기를 털어 밥솥에 넣고 정수기 물로 물을 맞추면 손에 물 안 묻히고 간편하고 빠르게 밥 짓기를 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의 쌀 씻기에 뒤늦게 감탄하고 집으로 돌아갔던 조카가 며칠 뒤 전화를 했다.
채반과 거품기를 이용해 쌀을 씻어 밥을 했더니 불순물이 깨끗하게 빠져나가 냄새도 안 나고 밥맛이 훨씬 좋아졌다며, 죽은 밥맛도 살리는 신박한 쌀 씻기 방법이라고 극찬을 했다.
좋은 건 함께 나눠야 하니 주변 사람들에게도 알려 주라고 했다.
요즘 플라스틱이나 스테인리스 볼에 구멍을 뚫은 쌀 씻는 도구가 시중에 많이 나와 있지만, 이것보다 쉽고 시원스러운 쌀 씻기 방법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다 보니 엄마 생각이 난다.
아흔이 다 되도록 혼자 사시면서 생활의 불편함이 생기면 만만한 딸에게 전화를 하시곤 했었다.
엄마가 사용하시던 전기밥솥이 낡아서 목소리 안내 멘트가 나오는 쿠쿠 압력밥솥을 새로 사 드렸더니, 밥맛도 좋고 김 빠진다, 밥 다 됐다고 친절하게 알려 주기까지 한다며 무척 좋아하셨다.
그렇게 며칠을 쓰시더니 하루는 전화를 하셔서는 밥솥에 밥이 자꾸 눌어붙는 걸 보니 제품이 불량인 것 같다고 하셨다.
엄마 댁에 직접 내려가서 확인할 상황이 아니어서 쿠쿠전자에 as 신청을 했다.
며칠 후에 as 기사님이 가서 보시더니 밥솥에는 문제가 없는데 혹시 쌀이 문제일 수 있으니 다른 쌀을 사서 밥을 지어 보겠다고 하셨다.
얼마 후 새 쌀로 지은 밥은 눌지 않은 걸 보니, 밥솥이 아니라 쌀에 겨가 많은 것이 원인인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연로하신 분 혼자 사시는 걸 아시고 그렇게까지 as를 해 주신 기사님이 지금 생각해도 정말 감사하다.
진작에 위와 같은 쌀 씻기 방법을 알았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을 해 보지만, 엄마는 이미 이 세상에 안 계신다.
쌀 씻는 방법 얘기하다가 또 엄마 얘기로 끝난다.
이 나이에도 기승전 엄마다.
'정보 > 생활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인 99%가 틀리는 맞춤법? (0) | 2020.11.19 |
---|---|
세상에서 제일 쉬운 배추전 만드는 법 (0) | 2020.11.17 |
가리비 손질법과 찌는 법 & 효능 (0) | 2020.11.15 |
트렌드코리아 2021 키워드 / COWBOY HERO (0) | 2020.11.14 |
MBN 김주하 AI 앵커/이보다 더 똑같을 순 없다 (0) | 2020.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