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상판 테두리에 이어 붙인 부분이 갈라져 틈이 점점 더 벌어지는 것이 불안했다.
생각 같아서는 싱크대와 세트로 짜 맞춘 식탁을 뜯어내고 싶었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라 조심하며 사용하고 있었다.
되도록 식탁 가운데에 하중이 실리지 않게 무게가 나가는 냄비나 그릇은 식탁 다리 윗부분에 놓았고, 상판에 발꿈치로 힘을 가하는 것도 금기사항이었다.
가끔은 식탁이라기보다는 떠받들어야 하는 상전 같았다.
식탁을 시공한 사람이 조금만 더 생각했더라면 하필 식탁 한가운데를 이어 붙이진 않았을 텐데, 직업 정신이 부족한 사람이었다는 뒤늦은 한탄을 했다.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봉을 받칠까도 했지만, 상판 밑으로 빈 곳이 있고 합판이 대어 있어서 식탁 밑을 봉으로 받친다 해도 상판이 아니라 덧댄 합판을 받치는 거라, 내려앉는 상판을 떠받치지는 못하는 구조였다.
백문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고, 열 마디 말보다 사진 한 장 보는 것이 빠를 것 같아 첨부하자면....
바로 이 모습이다.
식탁 길이는 길게 빼면서 한쪽은 다리 없이 벽에 붙여 고정하고 반대쪽에만 커다란 원형 다리를 하나 달았다.
식탁 밑으로 다리라고는 그것 하나밖에 없어서, 의자를 넣고 빼거나 다리를 두는데 걸리는 것이 없어 편하기는 하다.
그런데 문제는 다리가 하나밖에 없는 식탁에, 상판 밑으로 두르는 테두리는 자투리를 썼는지 딱 가운데를 저렇게 이어 붙여서 지탱하는 힘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아낄 걸 아껴야지, 하필 한가운데를 이어 붙이는 바람에 그 이음새가 식탁 전체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 되고 말았다.
오랜 시간 상판에 하중이 가해지니 가운데가 서서히 휘어지면서 이어 붙인 곳이 점점 벌어졌다.
무엇을 받쳐야 안정감 있게 식탁을 식탁으로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지 여러 날 궁리했다.
봉을 받치면 까딱하면 퉁겨질 것 같아서 좀 더 안정감 있는 그 무언가가 필요했다.
높이에 맞는 서랍장을 사서 받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식탁 높이를 재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사할 때 버리자는 걸 부득부득 가지고 온 서랍장이 떠올랐다.
결혼할 때 붙박이장, 책장, 책상과 함께, 가구 디자이너에게 맡겨 맞춤 제작한 거라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여전히 튼튼하고 좋기만 한데 왜 버리냐며 기어코 들고 온 것이다.
혹시나 해서 서랍장 높이를 재었더니, 세상에, 이럴 수가....
높이가 안성맞춤이었다.
그때의 희열이란...
서랍장의 높이가 원래 식탁 높이보다 1cm 정도 낮았지만, 상판 가운데가 살짝 내려앉으면서 높이가 기가 막히게 딱 맞았다.
서랍장이 처음에는 식탁 가장자리 쪽으로만 들어가고 가운데 갈라진 틈이 있는 곳은 너무 내려앉아서 안 들어가기에, 첫날은 가장자리 쪽에 받치다가 차츰 가운데 쪽으로 옮겼더니 며칠 만에 갈라진 틈이 있는 곳까지 옮길 수 있었다.
당분간 식탁 끝쪽에 몰려 앉아서 식사해야 하지만, 그 불편함은 안중에도 없고 찰떡같이 들어맞는 사이즈에 너무나 신이 났고, 혹시나 식탁이 부러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말끔히 사라지니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 없다.
식탁 문제로 고민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면서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먼저, 사람이든 물건이든 제 자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저 서랍장은 원래는 책장, 책상과 한 세트였다.
이사하면서 책상은 없애고 책장은 다른 방에, 서랍장은 침대 옆에 두고 사이드 테이블 삼아 쓰고 있었다.
너무 오래되고 디자인도 마음에 안 든다며 버리자는 걸, 맞춤이라 튼튼하고 바퀴까지 달려서 얼마나 실용적인데 버리냐며 반대를 무릅쓰고 끌고 왔는데, 이제야 제 자리를 찾은 것이다.
침대 옆 사이드 테이블로는 그저 그랬지만, 불안정한 식탁 밑을 받치니 대체 불가의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물건이 되었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쓸모 있는 사람과 쓸모없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제 자리를 찾아가면 누구나 대체 불가의 꼭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산다는 것은 안성맞춤의 제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인 것도 같다
다른 하나는, 버팀목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한 깨달음이다.
버팀목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다.
명사 (1) 어떤 대상이나 상황을 지탱해 주는 기반이나 힘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2) (기본의미) 물건이 쓰러지지 않게 받치어 세우는 나무. |
지탱해 주는 기반이나 힘, 쓰러지지 않게 받치어 세우는 나무.
생각만 해도 든든한 단어이다.
방치하면 부러지거나 내려앉을까 걱정스러웠던 식탁을 든든히 받치고 있는 서랍장처럼, 심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버팀목이 될 만한 사람이나 제도가 있다면 최소한 무너져 내리지는 않을 것이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버팀목 전세대출'이란 이름은 참 잘 지었다.)
올해는 코로나가 몰고 온 단절과 경제적 불황으로 인해 버팀목이 필요한 사람들이 어느 때보다 많을 것이다.
이웃을 애정 어린 눈길로 돌아보고 부족한 가운데서도 오병이어의 나눔을 실천할 때, 서로를 받쳐 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든든한 식탁 받침대를 마련하고 나니 마음에 여유가 생겼는지 이런 생각도 하게 된다.
나의 버팀목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지, 나는 누구의 어떤 버팀목이 될지 깊이 생각해 봐야겠다.
버팀목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을 표현한 복효근 시인의 시 한 편을 감상하며 글을 맺는다.
버팀목에 대하여 (복효근)
태풍에 쓰러진 나무를 고쳐 심고
각목으로 버팀목을 세웠습니다
산 나무가 죽은 나무에 기대어 섰습니다
그렇듯 얼마간 죽음에 빚진 채 삶은
싹이 트고 다시
잔뿌리를 내립니다
꽃을 피우고 꽃잎 몇 개
뿌려주기도 하지만
버팀목은 이윽고 삭아 없어지고
큰바람 불어와도 나무는 눕지 않습니다
이제는
사라진 것이 나무를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허위허위 길 가다가
만져보면 죽은 아버지가 버팀목으로 만져지고
사라진 이웃들도 만져집니다
언젠가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기 위하여
나는 싹틔우고 꽃피우며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복효근 <새에 대한 반성문> 시와시학사, 2000년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복기포 불찰노기 / 구휼미 단상 (0) | 2020.12.29 |
---|---|
털레기를 아시나요? (0) | 2020.12.19 |
공차 메뉴 추천/나의 힐링 음료 (0) | 2020.12.03 |
벽걸이 트리&패브릭 트리 포스터/크리스마스 분위기 UP (0) | 2020.11.21 |
이거 티스토리 권태기인가요? (0) | 2020.1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