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 할매 폰트(서체,글꼴) / 삶이 담긴 글씨체
우리나라의 문맹률은 1%대에 그칠 정도로 세계적으로 최저 수준을 자랑한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 여러 가지 이유로 한글 교육조차 받지 못한 채 까막눈이라는 평생의 설움을 안고 사신 어르신들이 그 1%의 상당수를 차지한다.
이러한 분들을 위한 성인 문해교실이 운영되면서, 뒤늦게 글을 깨우치신 어르신들이 자신들의 삶을 눌러 담아 쓴 시가 잔잔한 감동을 주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폰트에 도전하신 분들이 계시다.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운영하는 성인 문해교실을 통해 한글을 배우신 할머니 다섯 분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 4개월간 한 분당 2천 장의 종이에 연습한 끝에, 할머니 다섯 분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서체를 폰트로 제작했다고 한다.
폰트 작업에 참여하신 할머니들께서는 10년 이상 성인문해교육을 받으신 분들이며, 펜을 여러 개 바꿔가며 한 자 한 자 쓰셨다고 하니 더 값지게 느껴진다.
이른바 칠곡 할매 서체 (칠곡 할머니 글꼴) 5종.
칠곡 할매 김영분체, 칠곡 할매 권안자체, 칠곡 할매 이원순체, 칠곡 할매 이종희체, 칠곡 할매 추유을체가 그것이다.
폰트가 무엇인지조차 잘 모르지만, 또박또박 쓴 자신의 글자가 후손에게 인정받게 된 감격이 얼마나 큰지 인터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번 폰트 제작에 참여하신 할머니들께서는 한글은 쓸 만했는데 꼬부랑 영어는 무척 어려웠다고 고충을 토로하셨다.
한글에 비해 익숙지 않은 영어와 특수문자 작업에 더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이때는 가족들이 할머니들의 일 일 강사로 나서 도왔다고 한다.
이러한 할머니들의 고단한 노력의 결과, 영어도 어찌나 잘 쓰셨는지 어렵다는 말씀이 괜한 엄살로 느껴질 정도이다.
칠곡 할매 서체의 지식재산권은 칠곡군에 있으며, 개인 및 기업 사용자에게 무료로 제공된다고 한다.
이를 유료로 양도하거나 판매할 수 없으며, 원본 글씨 형태의 변형 없이 배포되는 형태 그대로 사용해야 한다.
칠곡 할매 폰트는 칠곡군청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https://www.chilgok.go.kr/portal/contents.do?mId=0404070100
국내 최초의 한글 전용 박물관인 충주시 우리한글박물관에서는 2021년 1월 5일부터 칠곡 할머니 글꼴로 제작한 표구를 상설 전시한다.
그리고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에게 이 폰트에 담긴 숨은 이야기와 제작 과정의 이해를 돕기 위한 안내 책자를 비치하고, 별도로 기획전도 열 계획이라고 한다.
할머니들의 글꼴에는 그분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더 정겹다.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는 자괴감과 생활에서의 불편함에 한평생을 움츠리고 사셨을 분들이 늦게나마 한글을 익힌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일반인으로서는 쉽지 않은 폰트까지 내셨으니 박수 받으실 만하다.
또박또박 쓴 글씨에 새겨 넣으신 어르신들의 삶의 무늬 때문인지 글씨체가 보면 볼수록 매력적이다.
"배우고 나이까 기분 좋드라."라는 글자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날아갈 듯한 글씨체 덕분인지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칠곡 할매요~ 잘 쓰겠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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