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로베리 문(strawberry moon)/인디언 식 이름 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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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스트로베리 문(strawberry moon)/인디언 식 이름 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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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로베리 문(strawberry moon)/인디언 식 이름 짓기

지난 6월 24일 밤 열한 시쯤, 단톡방을 열어 보니 보름달 사진이 한 장 올라와 있었다. 한 시간 전인 열 시쯤 사진을 올린 친구는 밤 산책을 다녀오다가 스트로베리 문을 보며 단톡방에 있는 친구네 건강과 행복을 빌었다고 했다. 11시 39분에 스트로베리 문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데 본인은 그때는 자는 시간이라 미리 빌었으니, 선하게 복 지으며 살겠으니 소원 성취해 달라고 그 시간에 맞춰 빌어 보라는 권유인지 주문인지를 남긴 게 한 시간 전이었다. 스트로베리 문(strawberry moon)이 뭐지? 그리고 왜 하필 11시 39분이야? 처음 들어보는 이 정체불명의 달 이름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달이랑 딸기가 뭔 상관이 있길래 스트로베리 문일까? 달 표면에 딸기 씨처럼 보이는 무늬라도 보이는 걸까? 아니면 딸기처럼 빨간색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에 창문을 열고 달 먼저 찾았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마치 기다리기라는 한 듯 눈앞에 떡하니 떠 있었다. 내 눈에는 평소에 보던 그냥 그런 보름달이었다. 딸기와 어떻게든 연관 지어 보려고 했으나 딸기는 딸기요, 달은 달일 뿐, 내 상상력으로는 '딸기 달(strawberry moon)'은 상상 불가였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뭐? 인터넷 검색! 포털 사이트에서 찾은 스트로베리 문(strawberry moon)에 대한 설명은 이랬다. '6월 보름달의 이름으로 먼 옛날 미국 북동부의 인디언들이 딸기 수확 철인 6월에 뜨는 보름달에 스트로베리 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달에 소원을 빌면 특히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유명해, 많은 사람이 이 달을 보며 자신이 좋아하는 상대와 이루어지기를 빌기도 한다.' 결국 스트로베리 문은 6월 보름달의 인디언식 이름이라는 것이었다. 
 
보다 과학적으로 접근하자면, 24일(현지 시각)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는 6월의 보름달은 특히 낮은 상공에 위치하기 때문에 더욱 빛나는데, 유럽의 보름달은 위도가 높아 약간의 딸기 색조를 띄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스트로베리 문이라는 명칭의 유래는 실질적인 근거가 없기 때문에 알 수 없다는 지극히 과학자 집단다운 설명을 내놨다.
 
스트로베리 문의 또 다른 이름으로 6월의 꽃 장미를 뜻하는 '장미의 달', 여름 더위가 시작될 때 보이는 달이라는 의미로 '뜨거운 달'이라 하기도 한다니 달에도 이름이 이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다.
 
'인디언식 이름'이라 하니 갑자기 1991년 개봉한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늑대와 춤을(Dance With Wolves)'이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장장 3시간 50분의 상영 시간을 자랑했던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인디언식 이름 짓기였다. '늑대와 춤을', '주먹 쥐고 일어서', '발로 차는 새', '머리에 부는 바람' 등 그 사람의 특징을 잡아 이름을 짓는 것이 당시에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던 기억이 있다. 한때 인디언식 이름 짓기가 유행하면서 양력 생년월일 여덟 자리 숫자를 넣으면, 인디언식 이름이 자동 출력되는 사이트가 인기를 끌기도 했다. 생각난 김에 생년월일로 알아보는 인디언식 이름 짓기 표를 소개한다.
 

생년월일로 알아보는 인디언식 이름 짓기 표

출생 연도출생월출생일
XXX0년생 : 시끄러운 또는 말 많은

XXX1년생 : 푸른

XXX2년생 : 적색

XXX3년생 : 조용한

XXX4년생 : 웅크린

XXX5년생 : 백색

XXX6년생 : 지혜로운

XXX7년생 : 용감한

XXX8년생 : 날카로운

XXX9년생 : 욕심 많은
1월 - 늑대

2월 - 태양

3월 - 양

4월 - 매

5월 - 황소

6월 - 불꽃

7월 - 나무

8월 - 달빛

9월 - 말

10월 - 돼지

11월 - 하늘

12월 - 바람

1일 - ~와(과) 함께 춤을
2일 - ~의 기상
3일 - ~은(는) 그림자 속에
4일 - (이날에 태어난 사람은 따로 붙는 말이 없음.)
5일 - (이날에 태어난 사람은 따로 붙는 말이 없음.)
6일 - (이날에 태어난 사람은 따로 붙는 말이 없음.)
7일 - ~의 환생
8일 - ~의 죽음
9일 - ~아래에서
10일 - ~를(을) 보라
11일 - ~이(가) 노래하다.
12일 - 그림자
13일 - ~의 일격
14일 - ~에게 쫒기는 남자
15일 - ~의 행진
16일 - ~의 왕
17일 - ~의 유령
18일 - ~을 죽인 자
19일 - ~는(은) 맨날 잠잔다
20일 - ~처럼
21일 - ~의 고향
22일 - ~의 전사
23일 - 은(는) 나의 친구
24일 - 의 노래
25일 - 의 정령
26일 - 의 파수꾼
27일 - 의 악마
28일 - ~와(과)같은 사나이
29일 - 를(을) 쓰러뜨린 자
30일 - 의 혼
31일 - 은(는) 말이 없다 
 

 

XXX5년 7월 22일생인 나의 인디언식 이름은 '백색 나무의 전사'인데 마음에 쏙 든다. 이름대로, 백색이 주는 깨끗한 인상과 같은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나무의 생명력, 그러나 현실에 타협하지 않는 전사의 기개까지 겸비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인디언식 이름 짓기가 한창 유행이던 2012년, 정치인들의 인디언 식 이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명박은 '푸른 바람은 맨날 잠잔다', 박근혜는 '빨간 태양의 기상', 안철수는 '빨간 태양의 파수꾼'으로 알려졌는데, 그럼 안철수는 박근혜의 파수꾼이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재미는 재미일 뿐, 따지지는 말자.
 
6월 보름달의 인디언식 이름이라는 스트로베리 문 이야기를 하다가 이야기가 곁길로 샜는데 다시 스트로베리 문 이야기를 하자면, 역시나 인디언다운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양력을 기준으로 보통은 한 달에 보름달이 한 번씩 뜨지만(특별히 한 달에 보름달이 두 번 뜨는 달도 있는데, 이때 두 번째로 뜨는 보름달을 블루문( Blue Moon)이라고 한다.), 딸기 수확 철인 6월에 뜨는 보름달에는 딸기와 연관 지어 스트로베리 문이라는 특별한 이름을 지어 붙인 점이 특히 그렇다. 그게 그거인 것처럼 보이는 것에도 그것만의 의미를 부여하여 특별한 것으로 만드는 작명법이야말로 몰개성화를 경계하고 각자의 개성을 살리려는 이 시대의 트렌드에 딱 맞는 것이 아닐까. 게다가 '사랑이 이루어지는 달'이라는 효험까지 장착했다니, 핑곗김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하는 용기도 내 볼 만하지 않겠는가.
 
스트로베리 문과 관련해서 가장 적극적으로 보도한 언론사는 뉴시스였다. 너무나도 예쁜 스트로베리 문 사진을 많이 공개했길래 몇 가지 가져왔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조명 비친 건물 위로 뜬 스트로베리 문/출처; 뉴시스

 

24일 그리스 아테네의 수니온곶에 있는 고대 포세이돈 신전 위로 걸쳐진 분홍빛 스트로베리 문/출처: 뉴시스

 

6월 24일 (현지 시각) 러시아 상테페테르부르크의 겨울궁전과 세인트 아이작 대성당 뒤로 뜬 스트로베리 문/출처: 뉴시스

 

6월 24일 제주시 하늘에 뜬 스트로베리 문/출처: 뉴시스 우장호 기자

 

아무리 찾아도 친구가 왜 굳이 11시 39분에 스트로베리 문에 소원을 빌라고 했는지 그 이유를 알 길이 없었다. 그렇지만 굳이 친구에게 답을 구하지는 않았다. 내년 6월에도 스트로베리 문은 다시 뜰 테고, 그때 물어도 괜찮을 것 같아서였다. 
 
단톡방 멤버 셋은 사회생활에 접어든 지 얼마 안 된 20대 후반에 만났다. 직장 동료 M과 그의 룸메이트였던 S와 나, 이렇게 셋이 어쩌다 친구가 되어 '우화'라는 이름의 계를 만들어 함께 여행을 다니고는 했다. 늦은 나이에 비슷한 시기에 결혼해서 비슷한 또래 아이들을 키우며 우화의 결집력은 더 공고해졌다. 곤충이 탈피를 거쳐 유충에서 성충이 되는 과정을 뜻하는 '우화'라는 계 이름에는 성충이 되고자 하는 그때 당시 우리의 바람이 담겨 있었나 보다. 그로부터 시간이 꽤 지난 지금은 참 많은 것이 변했다. 미국 이민 생활을 하다가 13년 만에 돌아온 S 덕분에 다시 뭉치고 보니, 오랜 친구는 이래서 좋구나 하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늘 만나 온 것 같은 익숙함이 있어 더 반가웠다. 지나간 세월만큼 각자 성취도 있는 반면에 건강 악화나 여타의 문제로 인한 어려움도 있는데, 그걸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에 서로 감사했다. 
 
지난 주말에 S의 남편이 입원해 있는 병원 로비에서 13여 년 만에 셋이 완전체로 만나 서로의 건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M은 나와 S의 가족을 위해 매일 아침마다 기도시간을 갖는다고 했다. 자기 자신을 위한 기도도 중요하지만 누군가가 중보기도 해 줄 때 효험이 더 크다는 신념이 있기에, M은 자신이 믿는 부처님께 하나님을 믿는 S와 나를 위해 아침마다 절하며 기도한다고 했다. 그의 기도 철학에 전적으로 동의하기에 나도 S와 부처님을 믿는 M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내고 있다. 
 
이런 히스토리가 있었기에 스트로베리 문을 보며 11시 39분에 기도하라는 M의 권유 같은 단톡방 지령에 누구도 '왜?'라는 의문을 달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우리가 나이만 먹은 게 아니었나 보다. 나이가 들면서 시들고 쇠퇴해 가는 것도 있지만, 우리 계 이름처럼 자신이 만든 한정된 틀을 고집하기보다는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깨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며 지켜보는 여유도 생긴 것 같아 감사하다. 
 
뉴시스에 실린 스트로베리 문 사진은 너무나 근사한데 반해, 스마트폰으로 찍은 우리의 현실 사진은 지극히 사실적이다. 스마트 폰의 프로 기능까지 동원해 찍었지만, 너무나 아마추어다운 사진만 얻을 뿐이었다. 기도하라는 지령과 함께 달 사진 하나 투척하고 자러 간 M 뒤로, S가 정말 밝다며 스트로베리 문 사진을 한 장 올렸다. 내가 찍은 것까지 나란히 두고 보니 이게 또 참 감동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바라본 6월 24일의 스트로베리 문/좌로부터 M, S, 나

 
같은 하늘의 같은 달을 보고 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다른 각도로 바라본 달 셋이 이렇게까지 감동적인 일일까마는 어쨌든 감동이다. 같은 듯 다른 우리네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사진이라는 생각이 든다. 같은 시대를 친구로 살아가면서 서로 달라서 오해하기도 하고 다름을 이해하기도 하면서 함께 나이 들고, 기구의 대상은 다르지만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참 든든하고 감사하다. 
 
내년 6월에 스트로베리 문이 뜰 때 우리는 어디에서 어떤 각도로 저 달을 쳐다보고 있을지 기대되고 궁금해진다. 그땐 M에게 왜 하필 11시 39분이어야 하는지 물어봐야겠다. 그때까지 우화 친구들 건강하게 잘 지내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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